카테고리 : 일상
2008/03/08   이 곳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면 나는 언제든 자유로워질 수 있어 [7]
2008/02/29   짧고도 길었던, 잊지 못할 그날 밤
2007/10/31   잘 지내십니까? [8]
2008년 03월 08일
이 곳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면 나는 언제든 자유로워질 수 있어
가장 그럴 듯 하게 나온 노출의 사진이 필름 첫 프레임이라, 아쉬운 대로 크로핑.

 겨울 방학 동안, 새벽에 학원을 다니면서 오전 시간에는 도서관 근로를 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지금은 '도서관 근로'가 '학교 수업 및 도서관 근로'로 바뀌었을 뿐이다. 덕분에 학교까지는 버스를 타는 대신 운동 삼아서 3~40분 정도 걸어가곤 한다. 제물포에서 남구청을 지나 용현 시장 뒷편으로 쭈욱 가면 거의 다 온 셈. 이제 '독쟁이 고개'라 불리는 완만한 언덕을 올라간 후 골목을 따라 학교로 도착하면 된다.
언덕을 올라 앞을 응시하면…….

 그런데 바로 그 언덕을 오를 때에, 나는 조금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겨울이다 보니 일출 시간이 늦어서, 학원을 나올 당시에는 컴컴한데도 학교로 오는 도중 해가 뜬다. 그런데 태양이 하늘을 물들이며, 그 빛에 감싸여 떠오르는 순간이 바로 언덕을 오르는 시간인 것이다. 실제로 나는, 오르막길을 오름에 따라 조금씩 어떤 대상의 부분으로부터 전체를 맞게 되는 그 벅참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남부터미널 역으로 나와 길을 따라 올라가면 둥그런 지붕 끝부터 보이기 시작하던 오페라 극장도, 쪽문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면 흔들림과 함께 눈에 차오르는 5호관도. 시야가 채워짐과 함께 가슴도 채워진다. 독쟁이 고개 역시 마찬가지였다. 숨을 고르며 언덕을 오르면, 시야가 넓어지면서 눈에 하늘이 서서히 차오른다. 그 풍경이 점점 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그것은 무척이나 두근거려서, 마치 꿈꾸는 언덕에 올라온 느낌이다. 특히나 숨이 막힐 정도의 아름다운 순간이라면 더욱 더.   
같은 위치에서. '해돋이 식당'이라니, 뭘 좀 아신다.

 매일 매일 습관처럼 길을 돌아…… 고개를 오르면서도 그 때마다 '이번엔 과연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기대한다. 건물로 가리어져 있던 하늘이 도화지처럼 눈앞에 펼쳐지면 마치 어둠에서 빛의 세계로 나아가는 기분이다. 그래. 언제까지고 이 일출을 볼 수 있을지 모를 거라 생각하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그 빛들을 매일 매일 눈에 담고 있었더랬다. 때로는 곱게 짠 비단을 물들이는 듯 애틋하기도 하며, 때로는 여러 군데 낀 구름에 세상이 끝나가는 듯한 극적인 장관을 연출해 내는, 같으면서 다른 모습의 빛을. 조금씩 일출 시간이 당겨지고 있어서 학원이 끝나면 날은 밝아 있고, 이제는 독쟁이 고개에 도착해도 해는 하늘 저 높이 뜬 채 찬란한 황금빛을 쏟아내리고 있을 뿐이지만 말이다.
독쟁이 고개와 용현 고개. 오직 눈에만 담았을 뿐, 독쟁이 고개의 일출을 사진으로 찍은 것은 단 한 번 뿐이다.
by 미르시내 | 2008/03/08 17:16 | 일상 | 트랙백 | 덧글(7)
2008년 02월 29일
짧고도 길었던, 잊지 못할 그날 밤
 종로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으면 밖에서 소방차 소리가 들릴 때가 많다.

 아마 처음으로 자각한 것은 정부중앙청사 사무실에 불이 났던 그 날이었을 것이다. 수업 하는 도중에 밖에서 소방차 소리가 왱왱대며 저쪽에서 이쪽으로 흘러 들어왔다. 대수롭지 않게 '웬 불이지……?'라고 생각했었고, 다음날, 정부중앙청사에 불이 났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불은 자정에 난 거니까 그 건은 아닌 것 같지만.

*   *   *





 ……며칠 전, 집에 불이 났었다.



 그 날은 눈이 왔고, 엄마는 춥다고 일찍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 나는 학원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음악을 들으며 자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 앞까지 바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기다렸다. 버스정보시스템 전광판을 보니 11분 후. 자주 오는 버스인데, 웬일인지 평소보다 느리다. 주머니에서 무심코 핸드폰을 꺼내어 보니 부재중 전화 한 통이 와 있다.

 엄마다.
 전화를 거니 대뜸 어디냐고, 왜 전화를 안 받냐고 소리친다. 나는 원래 이 날은 이 시간에 오지 않나―하고 되려 화를 냈다.

 ……그런데 엄마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집에 큰 일이 났단다………….
 나는 왜 그러냐고 물었고 엄마는 아버지도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무슨 일이냐고 계속 물어도 계속 큰일났다는 말 뿐이다.

 알았다고, 어서 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은 후 택시를 탔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는 줄만 알았다. 노무현 물러났으니 이제 올라오시는 건가……. 그런데 오다가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교통사고라도 난 건가. 평소에 아무 감정 없던 사람에게 '노무현 이 ×× 죽여버려.' 하면서 애꿎은 욕을 중얼거리며 택시를 탔다. 제발 아무 말 하지 말아 주었으면 했지만, 기사 아저씨는 마냥 즐거운 듯이 보였다. "이쪽 길은 눈이 아직 그대로 있네요―"라는 말에 나는 "차가 많이 안 다녀서 그런가봐요."라고 기계적으로 답했다. 아니 어쩌면, 애써 불안을 떨쳐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오는 그 3분 가량이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집에 오는 길에 소방차가 있는 거다…….
 아저씨는 웬 소방차냐, 어디 불 났나―하고 아무렇지 않게 중얼거리셨고, 나는 불길한 예감과 어렴풋한 확신으로 우리 집일지도 몰라요……라고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애써 삼켰다.

 내려서

 달렸다…….

 온갖 생각이 다 났다. 살면서 그렇게 생존에 대한 강한 위기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내가 다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그러니 제발 아니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엄마는 통화를 했으니 아무 일 없겠지. 그렇겠지……? 집이 없어지면 사라질 모든 것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지나갔다.

 달려서……

 골목 들어가는 길에 가까워 오니 더 많은 소방차가 보인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앰뷸런스도 있다. 왼쪽으로 꺾어 돌았다. 여러 대의 소방차가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을 막고 있다. 비집고 들어가 집을 확인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2층에 불이 켜져 있다…….

 최소한 불이 난 것은 아닌 거야.
 그러나 1층, 2층, 지하, 온 집의 문과 창문이 훤하게 열려 있었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엄마와 소방수 아저씨들이 모자를 뒤집어쓰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놀라서 달려가지도 않았다.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겨 그 곁에 섰다.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아는 체 하지도 않았고 끼어들지도 않았다. 그래, 야속하게도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눈앞을 희미하게 가려 정신마저 혼미해질 만큼. 평소에 그 어떤 불편이 있더라도 좋아하던 눈이 그렇게 원망스러운 적이 없었다. 현장 검증이 끝나갈 때 쯤, 나는 비로소 엄마를 꼭 안고 "무서웠지……?"라고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렇게, 집 뒷편은 모두 탔다.

 몇 달 째 세금을 내지 않아 이미 전기와 가스는 끊겨 버린 집이었다. 아내는 도망가고, 아이들도 없는 그 방 안에서 촛불을 켜고 술에 취해 잠들다 불이 번진 것이라고 한다. 일단 진술은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혹시 모르지. 사람들이 불이 난 것을 알아차리고 밖에 나왔을 때는 그 사람은 이미 밖으로 나와 멍하니 있었다고 하니.

 그래도 집 앞쪽으로 불길이 타고 올라오기 전에 진화해서 천만다행이다.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집은 연기 냄새로 가득 차 있었고 열어 놓은 창문 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깎아 놓은 단감이 그대로 있었다. 나는 숨을 들이쉬며 무심하게 가방의 책을 비웠다. 소식을 듣고 온 옆집 아줌마가 엄마를 위로하는데, 나는 제발 조용히 해 줬으면 했다.
 얼마 후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여전히 건설 현장에 있던 아버지는 그 후에 이웃과 친척에게 연락했으나 다 끝난걸, 뭐.
 그 날 옆집에 가서 잠을 청했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다. 장판은 뜨거워 땀이 났고, 몇 번이나 깨어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지금, 아버지는 일을 중단한 채 아주 돌아오셨다. 그리고 경찰서 진술도 끝냈고, 타버린 뒷집도 보았고, 지하에 들어간 물도 퍼냈고, 이제는 집 안의 매쾌한 냄새가 정겹기까지 하다. 아마 오늘은 기록 사진을 찍을 것이다. 녹아버린 TV와 뼈대만 남은 침대를 말이지.

 한바탕 지나갔고 정리되었으니 이제는 좀 안정되었지만……. 정말로 내 인생에서 최고로 놀란 순간이 아닌가 싶다.



 ………………………….
 ……돈을 내지 않고, 도망가고, 여러 가지로 시끄러웠던 세입자들 때문에 엄마는 힘들어하셨고 집이 싫다고 하셨지만 나는 오랫동안 살았던 이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었다. 비록 가난하고 꾸질꾸질한 동네였고 어린 시절 이웃들은 차례차례 이사를 가 이제는 한 집밖에 남지 않았지만 나는 아직은 굳이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런 동네라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방화라면 말이지.

 그러나 그처럼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도 처음이었고, 그렇게 이 동네를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처음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영화나 소설에서는 극한의 상황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본다. 아무리 감정 이입을 한다 하더라도 잠시 눈을 찡그리는 것 뿐이다. 그러나 실제 그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그 때에서야 비로소 얼마나 가슴 졸이고 떨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날 난 누군가가 죽는 영화를 보았었고, '안 돼……'라고 중얼거렸었다. 그러나 내가 같은 날에, 그 말을 다시 내뱉게 될 줄은 몰랐었다.

 "왜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가?"
 영화나 소설을 볼 때는 언제나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이 예술을 접할 때에는 어느 정도의 기대치가 있다. 사실 모두가 행복했으면 하는 게 공통된 바람이겠지. 그러나 절대 그것만은― 원하지 않는 일이, '하필' 일어나 버린다. 이를테면 사람이 죽는다든가 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제 맘에 들지 않는 작품에는 질시를 하며 때로는 그 결말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러한, 바라지 않는 그런 상황이 바로 내 앞에서, 현실에서 일어났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야 하는가……?"
 남의 일인 줄로만 알았던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남의 일이며, 나는 언제나 예외라고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러 번의 위기를 겪으며 질긴, 아니 빛나는 생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1999년 동인천― 인현동 호프에서 화재가 일어났을 때 이모는 놀라 사촌언니에게 연락했다고 한다.

 2003년, 고 3 올라가던 겨울방학의 생일 날, 자습을 나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문 앞 신문에는 전 날 있었던 대구 지하철 참사의 기사가 나 있었다. 뼈대만 남은 유령열차 같은 사진이 처참하게 눈을 자극했다.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케익을 먹으며 그 신문을 보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아버지가 해 주신 대구 지하철 일화에 눈물을 흘렸고, 그런 거 못 한다는 아버지께 억지로 문자 쓰는 법을 가르쳐 드렸다. 그 이야기 속에서처럼, 아버지가 나에게 가장 먼저 보낸 문자는 '사랑해'였다. 그리고 나는 재작년 4월 5일의 그 문자를 지금도 문자함 가장 밑바닥에 저장해두고 있다. 지금도 아버지는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언제나 당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표현을 사용하여 엄마와 나에게 문자를 보내곤 하신다.

 그리고 이번에는, 언제나 무음이었던 핸드폰을 진동으로 바꿔놓을까 하는 생각을 심각하게 하고 있다.





*   *   *

 그저께 학원에서 또, 소방차 소리가 들렸다.

 멀어서 아득하게가 아니라 바로 앞에서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사람들의 웅성임도 그대로 전해져 왔다. 평소에 자주 들리는 소리였는데도 너무 컸는지 선생님도 '불이 정말 크게 났다 보다.'라고 하셨다. 멈추지 않고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계속 왱왱 하고 맴돌아서,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트라우마.
 며칠 전의 그 기억이 떠올라 소리와 함께 맴돌았다. 우리 집까지는 안 탔으니 망정이지. 화재를 겪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뜩이나 신경 거슬리는 이 소리가― 귀를 드릴로 파고드는 것처럼 끔찍하게 들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by 미르시내 | 2008/02/29 00:20 | 일상 | 트랙백
2007년 10월 31일
잘 지내십니까?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네, 아마도요.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기분을 충족시켜 주기 위한 '잘 지낸다.'는 것도 거짓일 것 같으니, 왠지 '잘 못 지내고 있다.'고 해도 맞을 것 같군요. 그렇지만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아는 분이 '3학년만 되어도 취업에 대한 실감이 날 거다.'라고 하셨는데, 1학기까지만 해도 몸으로 느끼지는 못했거든요. 뭐, 언제나 걱정은 있는 상태긴 합니다만. 그런데 2학기가 되니 곧 졸업반이라 그런가, 정말이지 실감이 나더라고요. 그 동안 해 둔 게 없어서 여러 가지 하며 바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수업도 다른 것도, 할 것이 많군요. 이렇게 나 하나 추스리지 못하는 상태일 때는 사람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 진실로 대하기가 어려워지거든요.
 아아, 그렇지만 사실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나쁘지는 않네요……. 앞에서 말한 건 그냥 표면적인 거고요. 지극히 개인적인, 여러 가지 힘든 일들도 있긴 했었습니다만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슬픔이란 것은 그 자체보다도, 슬퍼하는 사람의 모습이 더욱 슬픔을 자아내는 것 같아요. 살아가야지요.

 좀 위태위태하게 보이더라도 신경쓰지 마세요. 이 글은 단지 10월에 하나라도 글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입니다. ……농담입니다. 어쨌든 잘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주절주절 쓰고 있지만 위로받거나 격려받으려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럴 만한 극한의 고통의 상태도 아니고요. 그저 어떤 상황이든 끌어안고서 견디고 싶습니다. 아아,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by 미르시내 | 2007/10/31 23:55 | 일상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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