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8월 31일
사람 한 명, 김밥 한 줄
 8월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마지막 쉬는 날이었다. 그 동안 밀린 일을 정리하고 새 학기 준비를 할 겸 해서 아침부터 홀로 외출을 했다. 영화를 보고, 필름을 맡긴 후 찾으러 갈 때까지 남은 시간은 5시간. 2시간 동안 서점에 들러 다른 할 일을 처리하고 한숨을 돌렸을 때는 이미 오후 4시였다. 줄곧 걸어다닌데다 점심도 먹지 않은 것을 깨달은 나는 비로소 가까운 김밥천국에 들어갔다. 아주머니께서 메뉴를 체크할 볼펜을 가져다 주셨지만 나는 곧바로 '김밥 한 줄'이라고 말했고, 아주머니는 그 볼펜을 다시 가져가셨다. 곧 식사가 나왔다. 업소명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기본 메뉴인데도 불구하고 메뉴판에 체크조차 필요없는 김밥에게 조의를 표하며, 나는 단무지와 장국과 함께 나온 그를 홀로 환영해 주었다. 국물이 목을 타고 들어가 속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자 나른해지며 비로소 가게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한산한 김밥천국에 혼자 들어와 달랑 김밥 한 줄 시키는 건 너무 초라한가, 하고 생각하며 식사를 하는 그 동안, 가게에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어오며 빠져나갔다. 두 명, 혹은 세 명이서 함께인 사람도 있었지만, 홀로 들어온 사람도 꽤 있었다. 장국과 단무지까지 모두 해치운 고작 10분 동안이었는데 말이다. 전부 회사원인 듯 했는데, 넥타이를 맨 그들은 다름없이 각자 김밥 한 줄을 시킨다. 한 줄로는 양이 안 차는지 두 줄을 시키는 사람도 있었긴 했지만서도. 늦은 점심식사일 수도 있지만 새참이라서 간단하게 먹는 것일 수도 있겠지. 아니면 돈과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사정이야 알 수 없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바라보며 마찬가지로 김밥 한 줄을 먹고 있노라니 그냥 언뜻 '그래,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사는구나.'란 생각이 들어 버렸다. 나의 지금에 우쭐해할, 혹은 비관하며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들 비슷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찬 물을 세 번 들이키고 1000원을 지불하고 나오면서, 이상하게도 묘하게 살아갈 의지가 생기는 것은 늦은 점심에 배가 불러와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by 미르시내 | 2007/08/31 20:52 | 상념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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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시온 at 2007/08/31 21:56
집에서 혼자 먹는 밥은 이상하지도 낮설지도 않습니다. 밖에서 혼자 보는 영화도 서점을 기웃거리며 책을 사고 쇼핑도 하고 다 하면서 혼자 밥먹는것은 어딘가 쭈삣거리게 됩니다. 그런데 아마 한번 하게 되면 두번째는 이상하지 않을것 같아요.^^; 이상한것도 희귀한것도 아닌 그냥 그럴수 있는 일이니까요.

Commented by 解明 at 2007/08/31 22:27
요즘 며칠 동안 파견을 나가서 혼자서 밥을 먹는 날이 많았었습니다. 낯선 곳에 와서 혼자서 일을 하려니 많이 힘들더군요. 외롭기도 하고.
Commented by Jen at 2007/08/31 22:31
저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혼자 먹을 때 너무 쓸쓸해서 밖에서는 혼자먹는 걸 굉장히 안 좋아해요. 집에서는 뭐 상관없다쳐도, 정말 밖에서만은 혼자서 밥먹는게 너무 괴로운 거 있죠 ^^;;? 후반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들 비슷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라는 말에 공감이 가네요~
Commented by 텐(天) at 2007/08/31 23:07
전 혼자 밥 먹는 것에 익숙해요. 단지 꼭 읽을 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 가끔은 시내님처럼 주위 사람들을 관찰해 보는 것도 좋겠네요. ^^ 그러고보니 임고 재수할 때는 노량진에서 혼자 학원을 다니면서 밥도 혼자 참 잘 먹었는데요..
Commented by 밀리타 at 2007/08/31 23:41
혼자 먹을 수는 있지만,혼자 먹느니 굶거나 과자를 챙겨먹는 사람이라서 저런 경험은 드물지만...노량진에는 혼자 밥먹는 사람이 많더군요.왠지 그 사람들 등에는 그 사람의 삶의 무게가 담겨있는 것 같아서 왠지 아련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응?;) 뭐 그렇습니다.
Commented by 미르시내 at 2007/09/02 15:26
/시온님/
전 오히려 집에선 챙겨서 안 먹는 편이에요. 귀찮...
영화도 서점도 쇼핑도 다 좋아요~>_< 밥 먹는 건 집과 바깥의 차이려나요.
언젠가 혼자 드실 일이 생기면 드셔 보세요...!
정말 한번 하게 되면 두번째는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 맞을 것 같아요. ^^;

/해명님/
안녕하세요? ^^ 태자님이신가요!!! (두둥)
아, 파견 근무를 하셨군요. 확실히 외지(?)에 나가 있으면 더 외로움이 사무친다 할까...
같은 일이라도 이런저런 상황에 따라 드는 기분도 다를 것 같아요.

/젠양/
나도 외로움 많이 타는 성격인데... 이젠 모든 걸 다 버렸어. (?)
농담이고, 하긴 뭐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
마찬가지로 이상하다고 생각할 필요 없는 거고. ^^
응, 그러게 말야... 뭐랄까, 세상이 다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슬프기도 외롭기도 행복하기도 한 것 같아. ^^; 특별히 삶이란 게 나쁠 것도 없더라고.

/텐님/
책! 그렇군요. 책과 함께라면 더 편할 듯 해요.
특별히 관찰한 건 아닌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지금 혼자 학교를 다니면서 혼자 밥을... 헉 왜 이럴까요.

/밀양/
밥을 먹어야지! 밀양 근데 나 지금 과자 먹고 싶어......(...)
네가 '과자만으로도 살 수 있다.'고 했던 게 생각나네. ^^;
하긴 노량진이라면 그런 사람 많겠다.
사람들의 등이라니 왠지 그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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