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7월 31일
정말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장면 찾느라 '반올림' 대본을 훑어보고 있는데 욱이를 좋아하던 애 이름이 '시내'였냐……. 왜 그 땐 몰랐던 거지? 기억을 더듬어 보니 '신애'인 줄 알고 있었던 듯. 아니 근데 왜 또 그런 역할이야!)

 지금은 메신저로 네이트온을 사용하고 있지만, 중-고등학교 때만 해도 또래 아이들은 모두 버디버디로 대화했다. 아마 당시에도 대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은 MSN 메신저를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말이다. 남녀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던 상대를 견디지 못해하던 내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을 때, 그 아이는 버디버디 아이디를 누르면 뜨는 프로필 란의 자기소개에 '돌아와 달라'고 했고 나는 '어차피 인간은 다 혼자'라고 응답했다. 그 다음의 활자적 리액션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밝고 활달하며 솔직하던 그 아이가 직접적으로 내게 대화할 시도도 하지 않은 채 그렇게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건 이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 3자를 통해 내가 멀어지게 된 이유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태도는 변함이 없었고, 대화 또한 없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나는 상대에게 이대로 놓아보낼 정도의 존재밖에 되지 않는구나.'란 생각에 더욱 원망은 깊어가고 속은 타들어갔다. 그 아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물론 왜 먼저 다가가지 않았느냐고 물을 사람이 있겠지만 그 때는 그것이 어려웠다. 그리고 하고 싶지 않았다. 나 혼자만 안달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슬펐으니까.
 버디버디에 로그인을 하게 되면 거의 매일 그 아이의 아이콘에 노란 빛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XXX님이 로그인하셨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떴지만 서로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때때로 상대의 프로필 란을 확인했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로 고민하고 있는 그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랑은 스릴, 쇼크, 서스펜스'라는 자기소개는 내가 좋아하는 '명탐정 코난'의 오프닝 중 하나였다. 만일 내가 함께였다면 그에 대해 언급했겠지, 하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너는 이미 초라한 친구 따위는 잊고 사랑이란 감정에 빠져 지내고 있구나, 나는 고민할 가치도 없는 대상이었던 걸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러던 중 버디버디에는 '나를 등록한 사람 보기'라는 유료 서비스가 생겼다. 결제할 필요성을 못 느껴 내버려두던 중 잠깐 동안이었지만 그것이 무료로 서비스되었고, 평소 없던 메뉴를 클릭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명단을 쭈욱 훑어보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 아이가 없었다. 관계를 돌이킬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설마 삭제까지 했겠어' 했지만 분명히 '나를 등록한 사람'에 그 아이는 없었다. 하긴 삭제하는 것은 자신의 뜻이고, 그런 거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도 있고, 사실 이 마당에 삭제해도 이상할 건 없겠지. 그래, 나도 그저 가슴이 서늘해졌을 뿐, 특별한 배신감이라든가 하는 건 없었다. 말은 걸지 못하고 그저 지켜보고 있었던 나는 어떻게라도 이어질 수 있는 끈을 놓고 싶지 않아하는 마음이 있었던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다시 잘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누군가가 이것을 비웃더라도, 당연하게도 멍청한 기대였더라도 말이다.
 ……내 아이디를 눌렀을 때 '삭제하시겠습니까?'하는 메시지가 떴겠지. 너는 '예'를 당연한 듯이 눌러버렸을까, 아니면 조금은 망설였을까. 지금에 와서 이런 생각이 무의미함은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새삼스레 궁금해졌다.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기에 종종 떠오르는 기억 속에서도 묻혀져 있었고, 메신저 차단과 삭제에 대한 글을 보고 나서도 만 하루 만에 떠올린 하찮은 기억이었지만 그래도 유쾌하지만은 않다. 씁쓸한 웃음 속에서 나는 내가, 지금은 사용하지도 않는 버디버디에 아직도 그 아이의 아이디를 지우지 않았음을 떠올려냈다. 그 때― 너도 나와 마찬가지로 '나를 등록한 사람 보기'를 눌렀다가 예전에 삭제한 친구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감동 따윈 받진 않겠지. 혹시 보더라도 아무런 감흥도 없을 거고 실은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메신저 차단과 삭제 확인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글을 보고 나서, 네이트온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대화 상대 삭제 확인을 해 보았다. 그런데…… 30명도 채 되지 않는 대화 상대 가운데 아무도 나를 삭제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조금 의외였다. 거의 대부분은 친한 사람들이지만, 소수의 스쳐 지나간 사람에게도 그대로 남아 있다니. 나 네이트온에 잘 들어가지도 않는데. 그 사람들에겐 굳이 삭제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거라고 제멋대로 생각하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왠지 모를 작은 기쁨이 밀려왔다.
by 미르시내 | 2007/07/31 21:32 | 상념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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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7/07/31 21:3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7/07/31 22:3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시온 at 2007/07/31 22:55
버디버딘 써본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천리안을 쓸때요.(네이트와 MSN다 쓰지만 MSN을 고등학교때부터 써서 그런지 네이트는 익숙치 않아요;) 상대의 아이디를 클릭하여 정보공개 프로필 이던가 그런걸 보는 기능이 있었어요. 아이디와 본명, 생일, 지역, 현재 위치, 짤막한 자기 소개. 메신져 같은 기능도 있어서 지인이 접속하면 접속하였습니다가 떳거든요. 친해지고 싶은 지인이 들어올때마다 스토킹 해서 그 지인뒤만 졸졸 쫒아 다녔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접속했습니다가 뜨면 어떻게 말을 걸까, 자연스레 인사를 할까, 어떻게 하면 우연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까 하다가 접속 종료-_-친구추가 랄까, 같이 서로 추가를 해야 알수 있는 정보도 있었는데 우연찮게 누른 프로필에 아 내가 상대방에게 등록이 되어 있구나-란걸 알았을때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 헤실헤실 웃기도 했고-포스팅이랑 ...좀 먼내용을 써놨군요ㅜ_-;엄청 기네; 오랫만이라 반가워요 미르시내님!
Commented at 2007/08/01 11:0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hikishen at 2007/08/01 11:16
좀 더 직설적인 인연의 끈에 대한 증거라고 생각될 때가 있지요... 메신저란 참 사소한 것 같으면서도 사람 기분을 들었다 놨다 할 때가 있어요..
Commented by kyung at 2007/08/01 12:41
..메신저때문에 상처받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그러려니하고 살고 있어요. 아이러니하지만, 메신저덕분에 마음이 좀 더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Commented at 2007/08/01 18:0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미르시내 at 2007/08/01 22:25
/비공개 1님/
네, 그렇죠. 아하하. 저도 잘 안 합니다.
그래요? 그 분은 예뻤나요? (...)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
...아, 아무튼 제(?)가 행운을 준 걸 거에요? (거기까지)

/비공개 2/
그러게. 상호적으로 관리하라는 건가. 푸.
그래도 찾아서 하지는 않았는데...(귀찮아서;;;) 친절한 설명을 보고 해 버렸어.
근데 네이트온 말고 싸이? 그런 기능도 있어? 케엑. 그냥 끊어지는 거 아니었나.
아무튼 뭐, 차라리 모르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는 듯 하다.
응, 고마워. 그럴 거야. 그런 일은 없을 테지.

/시온님/
아항, 그랬었나요? +_+ 접속했습니다라... 우훗. 왠지 두근거리는데요.
푸하하하 그 접속 종료는 왠지 공감이...-_-; 망설이는 사이에 막...;
아, 서로...여야 알 수 있는 정보도 있었군요.
뜻하지 않게 알게 되면 정말 그런 웃음이 나올 정도로 괜히 좋았을 것 같아요.
...그게 사실 7월 포스팅이 하나도 없길래 덜덜;;; 넵, 반가워요~

/비공개 3/
안타깝지만 그런 건 아닐 거야. 그 아이디로 접속한 게 보였거든.
...응,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좋겠지. 알 수 없는 걸 억측해봤자 좋을 리도 없고.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으니까 상대의 마음이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한 거야? 아하하하. 이상한 기분이었겠다. 무덤덤했으려나.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구나...
유독 매달렸던 건 사실인데, 시도하지 않았다는 후회가 있어서 그런가.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마운데. 현재에 충실할게요. -_-)/

/시키센님/
직설적인 인연의 끈에 대한 증거라니... 정말이네요. 정말 표면적으로 보일 수 있는?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정말 온갖 상상의 나래를 다 펴게 한다는...;
삭제 같은 것도 사람 성격에 따라 다르긴 한데 배드 커뮤니케이션이랄까...-_-;

/경님/
맞아요 맞아요. 다 그러려니 하고 살게 되더라고요. 으하하.
뭔가 세상을 알아갈수록 너그러워진다고 할까...; 둔감해지는 건가. ^^;
헉 왜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얘기하고 있지;;; 아무튼 800번째 덧글이에요~>_<

/비공개 4/
그래. 표정과 말투가 보이지 않으니까 오해의 소지가 생기기도 하고...
문자 같은 것도 비슷할지도. 그래서 이모티콘을 쓰는 건지도 몰라.
근데 진짜 그렇긴 하겠다~ 메신저가 없었으면 맺어질 관계도 없었을지도 모르고...
대화의 통로가 되어주는 거잖아. 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거겠지. 으흣.
Commented by 팬더맨 at 2007/08/01 22:26
저는 그냥 상대방의 속까지는 헤아리지 않으려구요-_-;
모르는게 약 이라는 말도 있고..만약 누가 나를 싫어하는거 알게되면 싫기도 하고..ㅎ;
저는 쭉~엠에쎈 만 써왔는데..고등학교 때 친구들 때문에 잠깐 쓴 버디는.....변태가 너무 많았어요..-_-
Commented by 미르시내 at 2007/08/04 06:28
/팡화백님/
정말 생각해봤자 머리만 아프고... 알아서 좋을 것 없는 것 같아요.
그러려니 하는 게 상책인가. 싫어하는 건 싫고, 슬프죠.
아하하하 버디 17세 여고생 12시가 되면...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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