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30일
겨울로, 그리고 다시 가을로
 11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아울러 가을의 끝이기도 하지요. 사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달 단위로 나눈다는 게 억지스럽긴 하지만 어쨌든 내일부턴 겨울이네요. 11월은 가을이라기보다는 겨울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저에게만 그런지 모르겠지만요. '이제 겨울이구나―' 했다가 12월, 1월, 2월 하고 세어 보고는 '아, 아직 가을인가.' 하곤 하지요. 11월은 연말이라 그렇게 느껴지나 봅니다.
 올해는 가을이 30일 정도밖에 안 되었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에서 4계절의 아름다움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저로서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30일 정도 되는 가을도 제대로 된 가을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날씨만 서늘했다 뿐이지 나뭇잎은 초록빛을 띠고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9월은 여름의 연장인 듯 더웠고, 10월은 잠시 추웠다가 서늘한 날씨가 되었다가, 그렇게 한겨울 같은 추위를 몇 번 반복하며 날씨가 오락가락하더니, 11월쯤에서야 비로소 제가 있는 곳에선 단풍이 많이 물들어서, 가을 느낌이 났던 것 같아요.
 11월의 끝자락, 왠지 가을을 이대로 보내기 서운해서 하루 날 잡아 학교 안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더랬습니다. 필름이 많이 남아서는 절대 아니고요. 몇 장은 11월 초, 중순에 찍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11월 하순 경에 찍은 사진들이에요. 가을 사진을 찍은 다음 날 나뭇잎들이 우수수 다 떨어졌길래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릅니다. 왠지 그 며칠 간이 저에겐, 진정한 가을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제가 공부하는 5호관 빌딩……은 아니고 5호관 건물 중간에 솟아올라 있는 시계입니다. 그리고 플라타너스 잎.
 이렇게 생긴 건물 위에 아까같은 기둥(?)이 또 붙어 있지요.
 플라타너스. 저는 붓으로 겹칠한 듯이 벗겨진 플라타너스의 줄기와 역시 그림처럼 색색으로 물드는 잎을 좋아합니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플라타너스/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벼, 별로 하늘이 파랗지 않아!!!
 도서관 지하로 가는 길. 보이진 않지만 작은 오솔길도 있어요. 여기 나무들은 거의 단풍나무일 텐데…….
 떨어져 있는 건 은행잎과 기타 등등 잎 같네요.
 그 기타 등등 잎의 정체입니다. 이름을 모르겠네요. 그리고 은행나무, 도서관 뒷(?)모습, 하늘.
 5호관 동쪽과 남쪽이 맞붙은 곳으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나무입니다. 빨간색 노랑색이 어우러진 잎에 역광이 비쳐 투명한 빛을 내는 것이 예뻤는데, 너무 산만하게 나왔군요.
 주안역에서 학교로 오는 버스 안에서. 학교가 가까워 올 때 쯤, 그리고 은행나무 잎이 풍성할 때 쯤 찍었습니다. 학교 건물이 같이 찍혔으면 하고 바랐었는데 하이테크관이 나왔군요. 학교 로고까지 나왔으니 성공. 버스 창틀에 가려진 부분까지 합해서 '인하대학교'라고 써 있습니다.
 이 반대 차로에서 저 연두색 마을버스를 타고 왔어요. 사진 오른쪽에는 학교가 있고요, 사진 중앙에는 연인이 있네요? 아니 원래, 왼쪽 은행나무의 노란색과 오른쪽 녹색 잎을 대조시켜 찍으려고 했는데 오른쪽 나뭇잎은 많이 떨어져서 잘 대조가 안 되고……. 찍으려고 하니까 어떤 연인이 사이좋게 가로수길을 지나가더라고요.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어서 찍었으나 뭔가 가슴이 아픈 이유는 뭘까요.
 연인, 아니 가로수길에서 눈을 돌려 잠시 시선을 아래로 향했습니다. 주눅들어서 고개를 숙인 건 아닙니다. 늘어선 버스 사이로 느슨하게 비치는 빛― 그리고 그 빛을 받은 은행잎들.
 학교에는 문이 다섯 개 있는데요, 정문, 후문이 있고 정문 쪽에 2개, 후문 쪽에 1개의 쪽문이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면 좁은 길을 지나 쪽문으로 가는 길을 애용합니다. 제가 수업받는 5호관과, 근무하는 도서관 쪽에 가깝거든요. 쪽문으로 들어와서 구비구비 가다가 왼쪽에 있는 단풍나무를 찍었습니다. 이대로 계단을 올라가면 시야가 차오르면서 하늘로부터 5호관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는데요, 그 느낌 정말 좋아요.
 쪽문에서 도서관 쪽으로 오다가 찍은 하늘. 지, 지저분하군요.
 시간이 지나 노을. 가을은 푸른 하늘도 하늘이지만 해가 질 때의 하늘이 정말 황홀하도록 예쁜 것 같습니다. 특히 먹구름이 자주 껴서 매우 아름답더라고요. 언제나 못 찍다가 필름이 남아서 막판에 하나 찍었는데, 하필 그 날은 하늘에 붉은빛도 없고 먹구름도 없고 밋밋한 거에요. ……그런데 사진은 왜 이렇게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원래 실루엣 처리된 아래에는 학생들이 주안역까지 운행하는 스쿨버스를 이용하려고 줄 서 있습니다. 저 가로등마다 동네별로 스쿨버스가 서요.
 어머, 사진 질이 갑자기 좋아졌네요. 롤라이 35로 찍은 가을, 가을로……. 날이 저물었습니다. 올해의 가을도 이렇게 가고 있군요. 내년에 다시 돌아올 가을을 기다리며, 이제 겨울을 맞이해야겠습니다.
 11월의 마지막 날, 오늘은 눈이 왔더라고요. 저번에 비와 섞여 내리던 첫눈은, 전 보지 못했었거든요. 저에게는 사실상의 첫눈이기도 해요. 아침에 나올 때 시선을 스치던 눈 한 자락이 거짓말 같고 꿈 같았습니다. 저 일기예보 잘 안 챙겨 보거든요. 그래서 더 반가웠어요.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는 눈이 점점 더 많아져서 정말 눈처럼 내리고. 가을의 끝을 고하며 첫눈이 내렸던 걸까요. 이제는 다시, 내년의 가을로― 향하겠군요. 그리고 내일 당장 시험으로.
by 미르시내 | 2006/11/30 19:44 | 롤리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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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텐(天) at 2006/11/30 19:56
와아, 사진에서 정말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나네요. 이제 정말 겨울인가 봅니다.
오랜만에 기상청 사이트에서 0도와 - 가 붙은 숫자를 보며 느끼고 있어요. 어제까지는 모직코트를 입고 다니면 다닐만했는데 오늘은 춥더라고요. 확실히 겨울에는 무스탕이나 패딩, 혹은 토끼털이 아니면 추워서 다니지 못하는 저에게 진정한 겨울은 오늘부터 시작했나 봅니다. (장갑을 껴도 손이 시려운 걸 보니 더더욱 겨울이라고 느꼈어요.)

은행나무로 덮인 길, 정말 예쁘네요. 저희 학교 교문에서 학교까지 이어지는 길도 은행나무가 가득해서 잠깐 단풍이 졌을 때 정말 예뻤어요. 올해는 단풍이 늦게, 그것도 아주 잠깐 들었잖아요? 사실 너무 늦어져서 단풍을 기대하지 않았을 때 갑자기 며칠 사이에 확~ 들어버려서 더욱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아침에 등교하면서 와아~ 하고 감탄했어요. 정말 예뻤거든요. 새파란 하늘과 길게 이어진 은행나무길, 그리고 바닥에 깔려 있는 은행잎들과 재잘거리며 등교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 다음날, 저희반의 아침 봉사활동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남 일일 때에는 낭만이었는데, 막상 시끄러운 남학생 36명을 데리고 그 은행잎을 전부 쓸어모으려니 정말 힘들더군요. -ㅅ-;;; 아아, 현실이여.. OTL
Commented by perante at 2006/11/30 20:17
기분이 좋아 연인들 뒷태를 찍었으나 가스미 아파서 안습.
그 밑에 텐선생님의 현실에 또다시 안습.

.........가을은 쓸쓸한 계절이라..../담배
Commented by 존슨 at 2006/11/30 21:30
저도 오늘 집에 오는데
잡것들이 좁은길 전세내고 안비키는 바람에 짜증이 확
뭘 그리 천천히 걷는거야!!
Commented by 비오네 at 2006/12/01 00:20
사진 잘 봤습니다. 필름카메라로 찍으신 건가요? +_+
나뭇잎 색깔들이 초록인지 빨강인지 애매한 상태였는데 어느새 몽땅 물들고
눈깜짝할 새 다 떨어졌네요.. 사진도 몇장 못 찍었는데...

흠.. 커플들이라... 날씨가 추워지니 더욱 들러붙는 건가..
저는 이제 커플들도 너그러운 눈으로 소가 닭 보듯 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ㅡ_ㅡ;
대략 열흘만의 포스팅이군요. 그래도 한달을 넘겼던 지난번 포스팅에 비하면 빠른 주기입니다? +_+
Commented by 키란 at 2006/12/01 11:53
우리 학교에 있는 은행나무길의 은행나무들은
1주일을 주기로 초록잎에서 노란잎에 되었다가 다 낙엽으로 떨어져서
지금은 앙상한 나뭇가지만 있습니다...
몇일전만해도 초록이었는데 어느새 물들고 떨어져버리고 참-_-;
이제 앞으로도 가을을 보기 힘들겠지요..안타까워요ㅠ
사진들이 예뻐요>ㅅ<
Commented by 미르시내 at 2006/12/01 19:09
/텐님/
가을이 그리우면 한번쯤 꺼내 보아도 좋을 것 같아요. +_+
오늘은 12월의 첫날인데, 아아, 마지막 달도 이렇게 벌써 와 버렸군요.
그런데 요, 요새 마이너스까지 내려갑니까...(← 역시 일기예보 안 본다.)
아, 하긴 그러니 눈이 내렸겠네요. ^^; 이번주 좀 추운 것 같지요...;
저는 지금 티셔츠+가디건+패딩잠바 상태입니다. 옷, 장갑도 껴야 하겠...;
역시 낙엽이 하나씩 떨어질 때마다 시간이 흘러가는 걸 느껴요.
이번엔 하루 이틀 만에 떨어져 버렸지만...-_-; 맞아요~ 단풍 너무 짧았어요.
그나저나 정말 그런 단풍은 기억에 남을 만도 하겠어요.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왠지 그림처럼 눈 앞에 그려지는 듯 해요.
...그리고 그 다음날...의 압박이... 우하하......
'재잘재잘'이 '시끄러운'으로 변하는 순간... 푸후후... 고생하셨어요 우힛.
따뜻하게 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시길!!!

/페란테님/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찰칵!
텐선생님의 현실적인 현실에 안습...^^;;;
아아, 가을은 쓸쓸한 계절이니 이제 겨울을 기다려야죠!!! +_+
...하지만... 기다려도... 아 추워...(페란테님! 낙엽이 담배에 타서 불 나요!!!)

/존슨님/
우악!!! 그런 일이!!! ...저는 있죠... 예전에 어느 날인가...
사람도 많은데 어떤 연인들이 지이으이이으이이인짜 천천히 걷길래
그냥 그 사이를 확!!! 뚫고 지나간 적이 있어요. 에헷. 친구에게 칭찬받았...(...)
아니 고의는 아니었고... 고의였나... 아니 아무튼 그냥 자연스러운 척... 어엉?
Commented by 미르시내 at 2006/12/01 19:12
/비오네님/
네, 필름카메라에요. +_+ 디카 없이 애용하고 있지요.
그쵸그쵸~ 정말 가을빛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듯.
어느새 물든 잎과 하루만에 떨어져 버린 잎을 보고 당황했더랬지요.
그래도 사진으로 남겨둘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훗... 커플이군요... 추운데... 추워 보이네요... 아니다 따뜻할까...
초월적 경지에 이르셨군요. 존경합니다. 역시 너그러운 마음이 중요...
그런데 아핫, 열흘만의 포스팅인 거군요. ...푸하핫, 정말 저번엔 한달-_-을 넘겼었죠?
앞으로 정진하겠습니다. (...)
그래도 이것으로 11월에 포스팅 1개-_-하는 상황이 오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키란님/
에에~ 1주일!!! 전 그냥 멍하니 있어서 잘 몰랐는데 정말 1주일일지도요!!!
어느새 정신을 차려 보니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고 그러더라고요...
바람 불고 그래서 더 확확 떨어졌지요~ 여기도 거의 앙상하네요.
가을이 제멋대로인 것 같아요 후훗. 느긋한 가을을 보긴 틀린 걸까나요.
음 하긴 봄도 그렇고 가을도 그런 듯... 겨울도 생각 외로 안 추울지도 모르겠어요.
예쁘다고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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